자산배분의 정답은 없다… 결국 시장을 이해하는 사람이 이긴다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의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는 미래의 기대수익률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자산배분 모형이 제안됐으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블랙-리터만(Black-Litterman) 모형이다.
블랙-리터만 모형은 투자자가 기대수익률을 자의적으로 입력하는 기존 평균-분산(Markowitz) 모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초과내재수익률(Implied Excess Market Return)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시장에서 형성된 자산별 시가총액 비중을 출발점으로 삼아 각 자산의 기대수익률을 역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입력 변수에 대한 민감도를 크게 낮추고, 평균-분산 모형을 보다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 역시 완전한 해답은 아니다. 현실 시장에서 자산 간 시가총액의 차이가 단순히 수익률과 변동성만으로 결정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한국 증시보다 수십 배 크다고 해서 위험조정수익률까지 그만큼 우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장 규모에는 경제력, 산업구조, 유동성, 제도적 환경, 투자자 구성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시가총액만으로 기대수익률을 설명하려는 접근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우리나라 시장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등장한 것이 리스크 기반 자산배분(Risk-Based Asset Allocation)이다. 이 접근법은 미래 수익률을 예측하려 하기보다 각 자산의 위험을 기준으로 비중을 결정한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자산의 변동성에 반비례하도록 투자 비중을 배분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동성이 낮은 안전자산의 비중이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구조를 갖는다.
리스크를 균등하게 배분하는 전략은 평균적인 위험 수준 자체를 시장지수보다 낮게 유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위험과 수익의 관계가 선형이 아니라 볼록성(convexity)을 갖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위험을 일정 수준 줄였을 때 발생하는 기대수익 감소폭보다 위험 감소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장기적으로 보다 안정적인 투자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미래의 자산가격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복잡한 자산배분 전략 자체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효율적 시장에서는 자산가격이 예측 불가능한 정보에 의해 움직이는 만큼, 장기 투자의 성패는 개별 종목을 맞히는 능력보다 위험 대비 수익률이 우수한 포트폴리오를 얼마나 꾸준히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리스크 기반 자산배분도 어떤 방법론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성과와 특성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대표적으로 MDP(Maximum Diversification Portfolio)는 ERCP(Equal Risk Contribution Portfolio)나 IVP(Inverse Volatility Portfolio)보다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나 급락장에서는 MDP가 다른 리스크 배분 전략보다 더 큰 손실을 경험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차이는 각 모델의 설계 철학에서 비롯된다. MDP, MSRP(Maximum Sharpe Ratio Portfolio), MVP(Minimum Variance Portfolio)는 특정 목적함수를 최대화하거나 최소화하는 최적화 방식이기 때문에 특정 자산으로 비중이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하기 쉽다. 반면 ERCP나 IVP는 위험을 가능한 한 균등하게 분산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특정 자산으로의 쏠림이 상대적으로 적고, 리밸런싱 빈도와 강도 역시 완만한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작은 차이는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누적 성과와 위험 수준에서 상당한 격차를 만들어낸다.
결국 자산배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의 모델'을 찾는 일이 아니다. 어떤 모델도 모든 시장 국면에서 우월할 수는 없으며, 시장은 언제나 이론보다 복잡하게 움직인다.
진정한 경쟁력은 투자자가 시장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의 모형을 자신의 투자 철학과 시장 환경에 맞게 얼마나 유연하게 수정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수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전략을 자주 바꾸면 장기적인 성과를 검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실패의 원인조차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자산배분은 수학 공식이 아니라 투자 철학이다. 뛰어난 투자자는 모델을 맹신하지 않는다. 시장을 이해하고, 원칙을 지키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모델을 발전시키는 사람이 결국 장기적인 투자 성과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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